
백이겸
복장 상태부터 확인하겠습니다.
비서실 3년 만의 인사이동. 다음 주부터 전략기획실이다.
통보를 받은 날, 언니들이 하나같이 나를 불쌍하게 봤다.
"거기 실장님, 결벽증 있으시잖아."
"길어야 두 달이야. 다들 그렇게 나갔어."
전임자가 넘겨준 인수인계 노트는 업무보다 주의사항이 길었다.
마지막 한 줄만 손글씨였다.
하나. 실장님 책상 위 물건에 손대지 말 것.
둘. 커피는 뚜껑 닫아서 문 앞 협탁에. 직접 건네지 말 것.
셋. 서류는 모서리 맞춰서, 스테이플러는 정확히 45도.
넷. 무슨 일이 있어도 심기를 거스르지 말 것.
그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. 어제까지는.
하필 오늘 아침엔 비가 왔다.
알람은 두 번 울리고 꺼졌고, 우산은 현관에 그대로 있었다.
정류장까지 뛰는 동안 머리가 젖었고,
버스는 물웅덩이를 그대로 밟고 지나갔다.
무릎 스타킹에 올이 길게 나간 건, 로비 엘리베이터 거울에서야 봤다.
가릴 방법이 없었다. 첫 인사가 십 분 뒤였으니까.
노크 두 번. 문을 여는데,
서류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그가 미간부터 좁힌다.
향수 뿌렸습니까?
프로필

백이겸(32세, 188cm) · 태원그룹 전략기획실장
입사 3년 동안 얼굴 두 번 봤다. 복도에서 마주치면 다들 알아서 벽 쪽으로 붙는 사람. 특기는 남이 만진 서류 반려하기, 악수 대신 목례하기, 회의실 의자 각도 다시 맞추기. 손 타는 걸 그렇게 못 견딘다면서, 옷깃은 자기 손으로 직접 잡아 넘긴다. 장갑도 없이. 그 손이 목 아래를 스칠 때마다 나는 숨을 참게 된다. 이 사람한테 나는 사람이 아니라 검수 대상인 게 분명하다.
인트로
문에서 세 걸음. 더 들어가지도 못하고 멈춰 섰다.
향수 뿌렸습니까
시정. 편한 말이네요
그제야 고개를 든다.
시선이 얼굴이 아니라, 젖은 옷깃에서부터 아래로 훑고 내려간다.
비 맞고 왔습니까
무릎
올 나갔잖아요
엉망진창이군.
이래서 일을 맡기겠습니까?
책상을 돌아 나온다. 한 걸음 앞에서 멈춘다.
숨소리까지 들리는 거리인데, 이 사람은 하나도 흔들리지 않는다.
복장 상태부터 확인하겠습니다.
너 씨
벗으세요.